- 요즘 구성원들은 더 이상 리더가 되는 것을 커리어의 당연한 목적지로 여기지 않습니다.
- 리더십을 회피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리더십 모델이 구성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 조직이 먼저 리더십의 틀을 바꾸고, 함께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나는 절대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동화 속 피터팬은 어른이 되지 않기로 선택한 소년입니다. 네버랜드에 머물며 익숙한 질서 바깥의 삶을 살아가죠. 이런 피터팬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미성숙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정해진 성장 방식에 대한 은근한 반발처럼 다가옵니다. 조직의 어른이 되는 것, 리더가 되는 것. 그 길만이 우리 앞에 펼쳐진 커리어라는 긴 여정에서 유일한 선택지일까요? 요즘 오피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리더 자리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MZ세대 직장인 54.8%가 ‘관리직까지 승진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으며, 영국 Z세대 직장인의 52%, 일본 기업 직장인의 77.3%도 리더 역할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한국 응답자들은 ‘책임이 부담스럽다’(44%), ‘워라밸 유지가 어렵다’(13.3%)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출처: 잡코리아 2023, 로버트 월터스 2024, 일본능률협회 매니지먼트센터 2023). 리더가 되기를 망설이는 흐름은,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라기보다 ‘그 자리가 더 이상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팀장이 한 명 필요한데, 아무도 안 하겠대요.” 승진을 권하면 한 발 물러서고, 리더 자리를 제안하면 부담스럽다며 고개를 젓는 구성원들. 상사들 사이에선 “요즘 애들은 승진 욕심도 없네.”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흐름을 ‘컨셔스 언보싱(Conscious Unbossing)’, 즉 의식적으로 리더가 되지 않기로 선택하는 태도라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오피스 피터팬’이라는 표현으로 회자되며, 리더의 책임을 유예하는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철이 없는 걸까요?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자면 이건 단순한 태도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의 리더십 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리더 역할에 선뜻 나서지 않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리더가 된다고 해서, 회사 생활이나 커리어가 더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이 짧은 한마디에는 단순한 회피가 아닌, 그럴 만한 이유들이 담겨 있습니다.
① 책임은 늘어나는데 그만큼의 자유나 보상은 따라오지 않는다
회의는 많아지고,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할 일도 늘어납니다. 결정은 더 무거워지고, 상황을 조율하는 감정노동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보상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낍니다. 오히려 삶의 여유나 일의 균형은 더 줄어들고, ‘승진’은 보상이라기보다 감당해야 할 ‘짐’처럼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② 수직으로 올라가기보다 한 분야에서 더 깊이 성장하고 싶다
리더가 되지 않아도, 전문성과 영향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성장’은 곧 ‘승진’을 의미하고, ‘리더’라는 타이틀이 있어야만 공식적인 평가나 인정을 받는 구조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실력보다는 직책이 앞세워지고, 그 구조에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팀을 이끄는 관리자보다, 자기 일을 깊이 있게 해내는 전문가로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선택이 더 이상 ‘소극적’이거나 ‘비표준적인’ 경로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③ 승진이 곧 안정이라는 믿음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앞선 세대가 리더가 되어 책임을 다했음에도, 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헌신해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체감한 이후, 리더가 되는 일은 더 이상 ‘보장된 미래’가 아닌 ‘리스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조직이 흔들릴 때마다 과도한 책임과 감정노동을 떠안는 중간관리자의 위치는 더욱 불안정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 역할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④ 리더가 된다고 해서 정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리더가 되면 당연히 더 나은 대우를 받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는 이제 당연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더 바빠지고, 더 외로워지고, 더 많이 책임지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인식은 리더십에 대한 개인적 회피라기보다, 그 자리가 주는 삶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저 자리에 가면 내 삶은 더 좋아질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선뜻 그 자리를 선택하기 어려운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많은 조직이 오피스 피터팬 현상을 위기로 받아들입니다. 리더가 자꾸 비어간다는 건 곧 리더십 파이프라인이 무너진다는 뜻이고, 이는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요즘 사람들의 책임 회피’로만 해석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지금의 리더십 모델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승진이라는 경로가 더는 안전하지 않고, 리더라는 역할이 존중받지 않으며, 리더가 되는 순간 삶의 균형을 잃게 될 것 같은 구조. 이런 구조 속에서 리더가 되기를 망설이는 건, 비정상이라기보다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조직은 지금 묻지 않아온 질문들과 마주해야 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이 아니라, 리더십이라는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리더는 쉽게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리더가 되기 싫다는 말 뒤에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바꾸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리더십 구조를 조금씩 조정해 나간다면, 구성원들이 리더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다음은 현실적인 수준에서 조직이 고민해볼 수 있는 네 가지 변화의 방향입니다.
① 관리자와 전문가, 두 개의 커리어 패스 만들기
리더가 되지 않아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관리자가 되는 것만이 ‘성장’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전문가로서 깊이 있게 일하는 방식도 하나의 성장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실무에 몰입해 성과를 내는 사람, 기술적 깊이를 쌓아가는 사람에게도 그에 맞는 평가와 보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관리자와 전문가, 두 가지 길을 병렬로 운영하고, 둘 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분리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제도적 구분을 넘어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조직의 메시지가 함께 전달되어야 합니다.
② 작게라도 리더십을 경험하는 기회 늘리기
누구나 처음부터 팀 전체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리더십을 계속 미룰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식 직책이 아니더라도, 소규모 프로젝트를 이끈다든지, 팀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조율해본다든지, 작게 책임져보는 경험이 누적되면 리더 역할에 대한 부담도 줄어듭니다. ‘리더십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실패해도 괜찮은 공간과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길 기대하기보다는, 리더십을 안전하게 연습해볼 수 있도록 조직이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③ 리더에게 쏠리는 부담 나누기
요즘 리더가 되길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힘들어 보여서’입니다. 회의와 보고, 조율과 감정노동까지 대부분을 리더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승진은 곧 삶의 균형을 잃는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더 역할을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는, ‘팀 운영’이 특정 개인에게 몰리지 않도록 구성원 모두가 역할을 조금씩 나누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의 기록이나 업무 공유를 팀원이 돌아가며 맡는 것처럼, 팀 운영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일들을 모두가 감당 가능한 단위로 나누는 방식을 도입해볼 수 있습니다. 리더십은 더 많은 책임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방향을 함께 정하는 역할이라는 인식 전환도 함께 필요합니다.
④ 리더가 되어도 자기 삶을 잃지 않도록 하기
리더는 조직의 중심이지만, 그렇다고 자기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많은 구성원들이 리더 역할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자리를 맡는 순간 삶의 균형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조직은 리더가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회복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단순히 휴가나 복지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리더가 리더답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때로 회의 시간을 줄이는 일일 수도 있고, 때로는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를 맡아도 괜찮겠다는 감각, 그걸 조직이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일, 재미있으신가요?”, “의미는 느껴지시나요?”, “혹시 너무 지치진 않으셨나요?” 이제는 구성원들이 조직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보다, 지금 여기서 ‘일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먼저 물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구성원을 살피지 않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이제 조용히 되묻습니다. 내가 굳이 이 조직에서 성장할 이유가 있을지 말이죠.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리더십이라는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리더’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던 역할과 책임을 풀어내고, 함께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합니다. 조직이 먼저 그 틀을 바꿀 때, 누군가는 피터팬의 시간을 지나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리더로 성장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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