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바이오필릭 오피스: 초록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2025.05.26

초록이 있어도 자연이 느껴지지 않을 때

요즘 어딜 가도 식물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집 한구석에 고무나무나 돈나무 정도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이제는 훨씬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식물이 공간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천장에는 큼직한 박쥐란이 걸려 있고, 몬스테라와 여인초가 우거져 마치 정글 같은 분위기를 만듭니다. 줄기의 선을 강조한 황칠나무와 아랄리아는 공간을 고요하게 만들어주고, 따뜻한 햇살을 머금은 듯한 노란 꽃의 아카시아가 은은하게 흔들립니다. 큰 식물이 주는 생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집중과 여백을 만들어 주는 분재도 인기죠. 이미 많은 분들이 이런 장면을 한 번쯤은 경험해보셨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공간 곳곳을 식물로 채워 마치 자연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흔히 플랜테리어(Plant + Interior)라고 부릅니다. 친자연적인 디자인을 의미하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이 적용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오피스에서도 플랜테리어가 인기라는 이야기, 아마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플랜테리어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구현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입니다. 식물을 활용한 연출이 공간에 자연의 감각을 불어넣는 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장식의 소재로서의 자연보다는, 사람과 자연 사이의 감각적 연결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바이오필릭 오피스: 초록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벽에 덩굴식물이 늘어지고, 천장에는 행잉플랜트가 걸려 있으며, 곳곳에 화분이 놓여 있는 오피스’ 프롬프트로 생성한 AI 이미지

그렇다면 바이오필릭 오피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식물보다 앞서, 사람의 감각이 자연을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빛, 바람, 질감, 온도, 소리처럼,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자연의 요소들이 중요합니다.


감각: 자연에 반응하는 사람의 본능

인간은 본디 자연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스마트폰도 회의실도 없던 시대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감각은 여전히 자연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빛이 기울면 하루가 저물어감을 느끼고, 바람결이 달라지면 날씨 변화를 예감하는 감각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요.

바이오필릭 오피스: 초록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에드워드 윌슨은 1984년 저서 「바이오필리아」에서 사람이 자연과 가까워지려는 경향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명명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¹라고 명명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가까워지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취향이나 습관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뿌리를 둔 성향입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이 감각적 본능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자연을 단순히 배치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감각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이해하고, 이를 공간에 정교하게 반영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밝기의 변화, 공기의 흐름, 표면의 질감, 미세한 온도 차이, 공간을 채우는 소리 같은 작은 변화에도 끊임없이 반응합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감각의 자극들을 다시 공간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론입니다.

식물은 이러한 감각을 자극하는 가장 직관적인 매개 중 하나입니다. 플랜테리어(Planterior) 열풍은 바로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멋진 식물을 많이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식물들이 우리 일상 속에서 우리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 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플랜테리어의 핵심 포인트 입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 오피스에 회복 환경을 만들다

그렇다면, 왜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오피스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을까요?

오늘날 오피스는 일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오피스에서는 집중을 깨뜨리는 크고 작은 자극들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소음, 시각적 혼란, 예측할 수 없는 업무 요청 같은 요소들은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고, 깊은 몰입 상태에 이르는 것을 방해합니다. 여기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겹치면, 감정적 에너지가 소모되어 업무에 필요한 인지적 여유를 잃게 됩니다. 감각의 피로 또한 문제입니다. 인공조명, 건조한 공기, 단조로운 환경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고, 결국 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힘을 약화시킵니다. 그렇기에 감각을 회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진 일의 방향을 다시 잡고, 스스로 몰입의 흐름을 되찾는 과정입니다.

환경심리학자 레이첼 & 스티븐 캐플런(Rachel & Stephen Kaplan)은 '자연은 정말 사람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자연이 주는 회복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주의회복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을 정립했고, 그 핵심 개념으로 주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회복 환경은 네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². 1) 일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며, 2) 주의를 끄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고, 3) 공간에 짜임새가 있으며, 4) 몰입이 일어날 수 있을만한 환경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오피스로 이야기하자면, 구성원들이 스트레스를 받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곳곳에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으며, 전체 공간이 조화롭고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야 합니다.그리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활동에 자유롭게 몰입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져야 합니다. (다만 이 네 가지 조건을 오피스에 적용하는 방식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복은 지극히 감각적인 경험이기에, 구성원의 성향과 조직의 맥락에 따라 그 해석과 구현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이오필릭 오피스: 초록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환경심리학자 레이철&스티븐 캐플런의 회복 환경의 4 요소

일의 리듬을 잇는 전략, 회복

지금 우리는 손과 머리만이 아니라, 감각 전체를 동원해 일하고 있습니다. 해석하고 판단하며, 감정을 조율하는 섬세한 작업이 반복되는 가운데, 어느 순간 우리는 회의실을 나서며 이렇게 말합니다. “몸도 마음도 다 지친다.” 특히 반복되는 업무는 인공지능(AI)이 대신하고 있는 지금, 사람에게는 맥락을 읽고 관계를 이어가는 감각적 노동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흐트러진 감각을 다시 정돈할 수 있는 짧은 틈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략적 회복(Strategic Recovery)이라 부릅니다. 전략적 회복은 오래 쉬는 일이 아니라, 일과 감각 사이의 연결을 끊기지 않게 하는 조율입니다. 예를 들어 회의 사이에 창가에 서서 잠시 바깥을 바라보거나, 복도 끝 조용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는 짧은 순간들이 그 역할을 합니다. 

바이오필릭 오피스: 초록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전략적 회복’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일을 다시 잘 하기 위해 흐트러진 감각을 다시 정돈하는 틈이다

아마존의 뉴욕 미드타운 오피스 ‘행크(Hank)’는 전략적 회복을 공간에 정교하게 녹여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오피스는 구성원이 감각을 되찾고 일의 흐름을 다시 이어갈 수 있도록, 일상 속 짧은 회복의 순간들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9층까지 연결된 내부 계단은 자연광을 깊숙이 끌어들여 층간 이동 자체를 감각 회복의 기회로 만들고, 버드 케이지(Bird Cage)라 불리는 아트워크 공간은 시각적 자극을 통해 감각을 환기합니다. 테라스와 중정처럼 외부와 연결된 공간은 구성원이 짧은 시간 동안 리듬을 회복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휴식을 위한 공간을 넘어, 일의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이오필릭 오피스: 초록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 WRNS Studio / © Hollis Johnson, Amazon

감각이 이어질 때, 일도 계속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자극과 판단, 조율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손과 머리뿐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상황을 파악하고 맥락을 읽어야 일의 흐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감각을 언제나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있는 일은 피곤합니다. 이렇게 지친 감각을 잘 다독이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틈이 없다면, 생각은 흐려지고, 감정은 쌓이며, 일의 흐름도 쉽게 끊깁니다.

그래서 오피스에는 흐트러진 감각을 회복하고 다시 흐름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틈은 단순한 휴게나 여유 시간이 아닙니다. 감각을 회복하고 리듬을 다시 잇는 이 과정이야말로, 일의 지속성을 조용하지만 확실히 뒷받침하는 힘입니다. 이 흐름을 조율하고 회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진정한 역할입니다.


¹ Wilson, E. O. (1984). Biophilia. Harvard University Press.

² Kaplan, R., & Kaplan, S. (1989). The Experience of Nature: A Psychological Perspective. Cambridge University Press.

Editor
퍼플식스 스튜디오 강현구

퍼플식스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매달 컨텐츠를 받아보세요.

매달 오피스 공간, 일, 사람, 문화에 관한 퍼플식스의 인사이트를 전달드립니다.

추천 아티클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