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2025.06.20

집에서 시작된 질문, 오피스로 이어지다

요즘 ‘함께’라는 감각이 종종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메시지를 주고받고, 회의도 몇 번씩 하지만, 가끔은 내가 정말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의’ 무언가를 찾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정작 ‘우리’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건 뭐였는지 돌아보는 일은 자주 놓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관계의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거리 두기도 쉬워진 사회, 돌봄과 소속감을 개인이 감당하게 된 구조, 공동체보다 개인의 취향이 더 중요해진 문화처럼, 최근 몇 년 사이 더 뚜렷해진 변화들은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묻게 만듭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만난 책이 2025년 2월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입니다. 202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과 동료 나카 도시하루는, 현대 주거 구조가 어떻게 사람을 고립시키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냅니다. 이들이 말하는 ‘탈’은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가족 중심·소유 중심·프라이버시 중심으로 짜인 기존 주거의 틀에서 벗어나 관계 중심의 삶을 상상하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이 문제의식은 오피스를 새롭게 설계하거나 변화시키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가보다, 그 공간에서 어떤 연결이 가능해질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과제와 깊게 닿아 있습니다.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脫住宅: 「小さな経済圈」を設計する)』 저자: 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 Ahn Graphics

책을 읽다보니 우리의 또 다른 생활 공간인 오피스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오피스도 어쩌면 주택과 닮아 있는 건 아닐까? 각자에게 최적화된 좌석,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몰입 공간,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이 모든 것들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결국 ‘함께 일한다’는 감각을 줄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대화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우리가 함께 일하는 공간과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구조가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어떤 공간이 서로를 더 가깝게 만드는지에 대한 물음은 오피스를 만드는 퍼플식스 스튜디오에게도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을 함께 읽은 사무환경연구팀 세 명은, 이 책의 시선으로 오피스를 다시 바라보고 각자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대화의 시작은 ‘프라이버시’였습니다.


‘고립과 차단’이 곧 프라이버시일까?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현구: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을 읽다 보니, 요즘 오피스에서 말하는 ‘프라이버시’가 어쩌면 ‘고립’이나 ‘차단’으로만 좁혀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몰입을 위해 폰부스나 포커스룸처럼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 늘고 있지만, 그런 ‘차단된 혼자 있음’이 곧 프라이버시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저자들이 지금의 주거가 ‘고립된 밀실’처럼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오피스 공간도 물리적으로 모든 걸 차단하는 방식으로만 프라이버시를 구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몰두할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은: 저는 공간을 설계할 때 깔고 가는 전제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에서 지적했듯이, ‘주택=사생활을 위한 장소’라는 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공간을 밀실처럼 구획해온 것처럼, 지금의 오피스도 ‘방해받지 않는 몰입’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프라이버시도 ‘간섭받지 않는 고립 상태’로만 정의되면서, 폰부스나 포커스룸처럼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는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지금의 일하는 방식과 잘 맞는 걸까요? 물리적으로는 안정감을 줄 수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더 고립되고 불안정해질 수도 있죠. 프라이버시가 단절 그 자체가 아니라면, 우리가 설계하는 오피스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진슬: 진짜 프라이버시는, 누군가와 연결된 상태에서도 ‘나다움’을 지킬 수 있는 힘과 관련된 것 같아요. 고립이 아니라, 열린 관계 안에서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오피스에서는 책상이라는 ‘사적 영역’과 그 바깥의 ‘공적 영역’이 뚜렷이 나뉘다 보니, 라운지 같은 공간은 쉽게 나의 공간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편하게 머물기도 어렵죠.

오히려 프라이버시는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그렇게 공적이라 여겨지는 공간에서도 나다움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여유나 권한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요? 그걸 오피스에서 설계한다는 건 쉽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도전인 것 같아요.


경계가 아니라 여지를 설계하다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다은: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키이(しきい)’라는 개념이었어요. 시키이는 일본어로 ‘문턱’을 뜻하는 단어인데요,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경계라기보다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여백에 가까워요. 일본 전통 건축에서는 방과 방 사이, 안과 밖 사이에 놓여서 안과 밖을 완전히 나누지 않고도 서로를 느끼게 해주는 구조죠. 그러니까 단절보다는 ‘연결의 가능성’을 품은 경계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여지’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오피스의 ‘세미 오픈’ 구조와도 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공간을 완전히 나누기보다 조도나 가구 배치로 부드럽게 구획하는 방식이 훨씬 자연스러워요.

‘이런 개념이 현실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인스타그램 스토리 같은 일상 속 행동도 시키이의 한 예시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전면적인 공유는 아니지만, 가볍게 내 일상을 내보이는 태도가 사적 영역을 선택적으로 공적 영역에 공유하는 거잖아요.

현구: 저는 시키이라는 개념을 보면서, 결국 그 공간을 ‘어떻게 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사용자에게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커먼 스페이스라고 부를 수 있다고 느꼈어요. 라운지처럼 겉보기엔 공유 공간처럼 보여도, 사용 방식이나 시간, 목적이 픽스되어 있다면 사실상 구성원에게는 여지가 없는 공간이죠. 회사 입장에선 공용 공간일지 몰라도, 구성원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고요. 결국 여지를 설계한다는 건, 그 여지를 실제로 쓸 수 있는 권한까지 사용자에게 넘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야마모토 리켄의 첫 번째 사회주택 프로젝트인 구마모토현 호타쿠보 제1단지. 가운데 중정(중앙 정원)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주택을 통과해야 한다. 이때 주택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허브 역할을 하는 시키이가 된다. 중정의 관리는 주민들 스스로 한다. ⓒ Shinkenchiku Sha, Yamamoto Riken

진슬: 저도 요즘 그런 ‘걸쳐 있는 상태’를 허용하는 공간에 관심이 가요. 완전히 몰입하거나 완전히 쉬는 게 아니라, 그 중간 어딘가에서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공간 말이에요.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에서도 시키이 같은 틈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거나, 자잘한 경제 활동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했잖아요. 그게 꼭 뭘 하기 위해 계획된 자리가 아니더라도, 그냥 머물 수 있는 여백이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결국 오피스 공간도 일과 쉼, 몰입과 관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를 더 유연하게 오갈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단하게 나뉜 경계보다 중요한 건, 그 사이에서 잠깐 걸쳐 있을 수 있는 그 여지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아닐까요.


좋은 분위기만으론 커뮤니티가 되지 않는다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진슬: 책에서는 커뮤니티를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의 집합으로 정의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서로 잘 지내는 분위기’만으로 커뮤니티가 잘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관계의 온기도 중요하지만, 진짜 커뮤니티는 의사 결정에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불편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현구: 저도 그 말이 오피스와 그대로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함께 일한다고 해서 곧바로 ‘함께 결정하는 구조’가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회의에서 누가 말할 수 있는지, 발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런 작은 장면들이 커뮤니티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결국 커뮤니티는 단지 사람들로 채워진 상태가 아니라,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고 구성원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다은: 그래서 저는 ‘좋은 분위기’를 목표로 설계된 공간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라운지를 화기애애하고 스몰톡이 자주 오가는 장소로만 그릴 때가 많은데, 진짜 커뮤니티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 같아요. 책에서 말하듯, 커뮤니티는 단순히 잘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 같이 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관계에서 생기는 거잖아요. 그걸 공간으로 옮긴다면, 단지 예쁜 라운지보다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회의실, 의견이 자유롭게 공유되는 타운홀 공간, 리더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업무 공간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커뮤니티는 모여 있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작동하는 거니까요.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조성된 The Google Schoolhouse. 좌석 구획을 유연하게 조절하여 구성원간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는 정도를 직접 조절할 수 있다. ⓒ Rapt Studio, Michael Lyon

진짜 관계는 부딪힘을 통해 만들어진다

현구: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사이의 연결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오해도 해보고, 서툴게 부딪히기도 하면서 천천히 쌓이는 것 같아요. 마찰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그래야 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 상대에 따라 관계의 방법과 밀도를 조절하는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내가 어떤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인지도 탐구해나갈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회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는, 서로를 잘 알수록 더 의미 있게 흘러갈 수 있어요. 서로의 말하는 방식이나 침묵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쌓이면, 단순한 의견 교환을 넘어 관점을 북돋는 논의로 이어지게 되는 것처럼요.

다은: 저자들이 말한 ‘접촉’과 ‘얽힘’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려 했던 것도 지금 사회에 필요한 시도들이긴 하지만, 꼭 그런 방식만이 유효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모든 관계가 깊게 얽히거나 마찰을 겪어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니까요. 서로 선을 지키면서도 일은 잘 흘러갈 수 있고, 그런 간격이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저는 관계보다는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도 많다고 느껴요.

진슬: 저는 관계는 어느 한 방식이 정답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조율해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껴요. 책에 나왔던 일본 전통 주택의 창호처럼, 사회적 거리감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구조가 있잖아요. 열고 닫고, 비추고 가리는 선택이 가능한 공간처럼, 인간관계도 직접 부딪혀 보면서 내가 어떤 거리를 편안하게 느끼는지 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뮤니티도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렇게 조율해본 관계의 경험이 쌓이면서 비로소 자발적인 결속으로 자라나는 게 아닐까요.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관계가 자라나는 오피스의 조건
서울 세곡동 보금자리 아파트 3단지(‘강남하우징’). 마주 보고 있는 두 동 사이의 공용 공간은 주민들이 직접 조율하여 공용 텃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 Namgoong Sun, Yamamoto Riken & Field Shop

일하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묻다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은 단순히 주거 형태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며 설계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책이었습니다. ‘주택’이라는 제도에 숨겨진 전제를 들여다보면, ‘오피스’라는 공간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개인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고립을 전제하거나, 공동체를 지향한다면서도 구성원을 배제한 채 공간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 우리는 그런 익숙한 구조에 어느새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는 점을 돌아보게 됩니다.

최근 퍼플식스 스튜디오가 만나는 많은 고객들 역시, 오피스를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울리는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로를 믿고 협력하며, 스스로 중심이 되어 함께 지내려면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요. 「탈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에서 던진 물음은 지금 우리가 풀고자 하는 고민과도 닿아 있습니다. 회사 생활은 이제 단순히 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피스 공간에서도 그런 관계가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ditor
퍼플식스 스튜디오 강현구, 퍼플식스 스튜디오 김다은, 퍼플식스 스튜디오 박진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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