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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출근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문득 둘러보신 적 있으실까요? 요즘엔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카톡 · 유튜브 · 게임 · 쇼핑 등등, 갖가지 흥미로운 것들을 화면에 띄워두고 골똘히 집중하거나 미소를 띤 채 작게 키득대기도 하죠. 지루할 수 있는 출근길, 스마트폰이 주는 다채로운 경험에 슬며시 기대어 하루를 시작하는 것. 이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습관처럼 몸에 익은 평범한 아침 루틴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속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스마트폰에는 이미 취향과 개성에 맞게 정교하게 세팅된 맞춤형 세계가 구축되어 있죠. 덕분에 우리는 어떤 플랫폼에서든 우리의 관심을 끄는 상품이나 콘텐츠를 빠르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쉽고 직관적인 이미지와 영상들, 마음을 즉각적으로 파고드는 문구들은 만족감을 한껏 더해주죠. 이제 우리는 화면을 켜고 손가락을 이리 저리 움직이기만 해도, 높은 확률로 재미와 자극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텐데요.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 「경험의 멸종」의 저자이자 문화 비평가인 크리스틴 로젠입니다. 그녀는 기술이 만들어낸 각종 서비스들로 인해 오히려 현대인들의 경험이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이토록 많아졌는데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은 소멸하고 있다니, 도대체 어떤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까요?
이 시대 사람들을 사로잡는 경험의 대다수는 기술에 의해 매개된 경험입니다. 온라인 세상을 매개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험들이죠. 우리는 수많은 기업 또는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제공하는 간접 경험들로 여가 시간을 온통 채웁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도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디지털 세상에 기록하거나 전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 렌즈로만 바라보는 사람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서 영상만 찍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죠.
매개된 경험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문제는 매개된 경험이 우리 일상을 뒤덮으면서, 기술로 매개될 수 없는 인간적 경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풍경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연을 몸으로 만끽하지 못합니다. 촬영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노래에 진심으로 감동할 기회를 잃어버리죠. 크리스틴 로젠은 경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개된 경험에 빠져 사는 탓에, 기술로 만들어낼 수 없는 소중한 것들, “뜻밖의 행운, 직관, 공동체, 자발성, 공감” 같은 가치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이죠.
매개되지 않는 경험에는 한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매끄럽고 즐겁기만 한 매개된 경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고스럽거나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도록 느끼는 일은 사진 한 컷 찍는 것보다 지루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일은 채팅 한 번 보내는 것에 비해 아무래도 어색하고 부담스럽죠. 하지만 이런 불편한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경험이라는 것이 크리스틴 로젠의 생각입니다.
크리스틴 로젠의 관점으로 우리의 일하는 공간을 돌아볼까요? 회사에서도 매개된 경험들이 매개되지 않은 경험들을 잠식하고 있진 않을까요?
오피스는 ‘매개된 경험'이 매우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업무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데다, 최근에는 각종 AI 업무툴이 상용화되면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기조가 더욱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온라인 세상에서 ‘간접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이제는 더 나아가 AI를 매개로 세상을 파악하고 AI의 의견을 참고해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우리의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컴퓨터 앞에 붙어 있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호작용만을 원하게 됩니다. 미팅은 미리 계획되고, 커뮤니케이션은 정리된 메시지로만 오갑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나 즉흥적인 대화는 업무 방해 요소로 여겨지죠. 이로 인해 특히 줄어들고 있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편한 만남입니다. 인간적인 상호작용 속에 흐르는 어색함, 불편함, 감정적 마찰 같은 것들을 우리는 그다지 가치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비효율적인 것,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죠.
물론 일이 많고 바쁜 와중에, 굳이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대가로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편한 만남’이 줄어들면 잃게 되는 것 ① : 창의성
불편한 만남을 피하게 되면 우리는 더 창의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잃습니다. 내 일에 ‘타인의 관점’이 끼어들기 어렵기 때문이죠.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시선이 적절히 개입되어야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 자체는 불편하거나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괜히 여러 사람의 관점을 반영하느라 일의 진행이 늦어진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요.
비대면 협업 툴이나 AI 툴은 이런 불편함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줍니다. 효율성이라는 핑계 하에 우리는 자주 번거로운 대면 소통을 비대면 소통으로 대체하며, 과거에 사람에게 구했던 의견을 AI에게 묻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의 일에 끼어들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관점을 넓히지 못한 채, 각자 자신의 관점에만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편한 만남’이 줄어들면 잃게 되는 것 ② : 공동체 감각
불편한 만남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한 가지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 감각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표정 · 억양 · 몸짓과 같은 감정적 신호에서 때로 불편한 느낌을 받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순간 속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나고, 혼자가 아닌 ‘우리’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매개된 경험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그런 감정적 신호에 둔감해집니다. 동료를 사람으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정보와 데이터를 통해서 파악하게 됩니다. 감정을 느끼고 정서를 나누기보다는 각자의 역할과 기능 속에 머무르려고 하죠. 그러다 보면 인간적인 신뢰를 쌓을 기회를 놓치게 되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의식도 옅어져 버립니다.
『경험의 멸종』 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오피스가 구성원에게 제공해줘야 하는 가장 시급한 경험은 무엇일까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업무 효율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AI 툴, 더욱 더 매끄럽고 스마트하게 작동하는 IT 솔루션, 방해받지 않고 ‘스크린’ 속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업무 공간 등 매개된 경험을 고도화하는 방향성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함께 일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살려줄 수 있는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이 아닐까요?
엘리베이터에서의 우연한 대화, 낯선 동료와 나누는 눈 인사, 다른 팀과의 의도치 않은 언쟁, 그러다 불현듯 드러나는 의외의 면모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경험들이야말로 우리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끌고 자기 경계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일터야말로, 매개된 경험들로 가득한 이 시대에 우리 조직의 힘을 지켜주는 든든한 기반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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